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행복한 삶, 건강한 삶

신흥무관학교 초대교장

  • 석오이동녕
  • 이동녕 선생의 업적
  • 신흥무관학교 초대교장
  • facebook
  • print
신흥무관학교 교가 - 서북으로 흑룡대원 남의 영절의 여러 만만 헌원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섬중 어린 것을 품에다 품어 젖먹여준 이가 뉘뇨. (후렴)우리 우리 배달나라에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그네 가슴 끓는 피가 우리 핏줄에 좔좔좔 물결치며 된다. 장백산 비단같은 만리낙원은 반만년에 피로 지켜온 옛집이어늘 남의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종 서름 받느니 뉘뇨. (후렴)우리우리 배달나라에 우리우리 자손들이라 가슴치고 눈물뿌려 통곡하여라 지옥의 쇗문이 온다. 칼춤추고 말을달려 몸을 연단(練緞)코 새론 지식 높은 인격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후렴)우리우리 배달나라에 우리우리 청년들이라 두팔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군사훈련을 지켜보는 이동녕

신민회를 창설한 이동녕은 국내에서의 국권회복활동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인식하고 국외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할 것을 결심, 뜻을 같이한 이회영 등과 함께 중국 동삼성 유하현 삼원보에 1910년 해외 민족독립투쟁의 가장 핵심적인 인재 배출 요람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신흥무관학교의 초대교장으로 이동녕은 다양한 과목 중 한국사, 윤리학, 경제학, 신지지, 박물학 등을 직접 담당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임시정부와 독립군 지원을 최대 과제로 삼고, 학생 교육은 광복투쟁정신으로 무장된 항일민족투사로서 단련하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이렇게 광복투쟁을 주도적으로 담당할 역군을 길러낸 문무겸전의 인재육성의 요람이었으며 이는 곧 이동녕의 구국적 기상과 신념의 소신이었다.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관리팀
연락처 :  
041-521-2824
최종수정일 :
2023-11-07 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