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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여행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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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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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문희
구분 관광체험
제목 독립운동가 석오이동녕선생 생가를 둘러보고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선생님의 생가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에 위치해 있으며 찾아가는 길이 복잡한 도심이 아닌 나무와 논밭이 보이는 시골길이라 그런지 기분좋게 드라이브를 즐기며 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생가 맞은 편에 자리한 석오이동녕기념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깔끔한 건물외벽이 꽤나 맘에 들었는데요. 내부에는 석오선생님의 생몰년도와 업적에 대한 설명글을 보기 좋게 정리해 놓아서 역사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 둘럳던 중 기념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기기도 갖추어져 있어서 아이들도 재미있게 즐기다 갈 수 있었습니다.



  발길을 생가지로 돌려 가보았는데요. 규모가 작지만 예쁜 한옥집이 단박에 제 마음을 사로잡더군요.



석오선생님은 1869년에 태어나신 후, 17세에 서울로 이주하기전까지 지내셨다고 합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셔서인지 선생 또한 한학을 하시면서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는 유명한 독립운동가 분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만큼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셨기에 사람들이 따랐던 거 같습니다. 제가 후손이라면 정말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석오선생님은 업적만 봐도 정말 후덜덜거릴만큼 훌륭했습니다. 정말 사람이 태어나서 좋은 일을 한가지만 하는것도 힘든 일인데 석오선생님께서 평생을 독립운동과 교육에 헌신하면서 많은 일들을 하셨더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광복을 못보고 1940년에 7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네요.





 마당에 선생님의 동상이 보이는데요. 관리자분께서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며 호의를 베푸셨지만 사진발이 영 받지 않는 횃불줌마는 찍기를 피하고 석오선생의 모습만 담아봤습니다. ^^



우물가 전경이 무척 예쁩니다.

이렇게 예쁜 꽃밭까지 꾸며져 있는 마당을 보니 생전에 이리 좋은 환경에서 사셨을 석오선생님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예전 석오선생의 할아버님께서 이 곳에 터를 잡으면 훌륭한 자손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굉장히 공을 들이셨다고 합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집터가 좋아서가 아니라 교육의 힘이 커서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터는 주변이 훌륭해 보여서 누구라도 욕심을 내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선생의 할아버님께서는 소원성취를 하셨네요.^^



 작고 아담한 곳이라 둘러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지만 제게는 화려하고 넓은 고궁이나 아흡아홉칸 기와집보다 더 아름답고 인상깊은 곳이었습니다.



  한쪽에 쉼터까지 갖춰져 있어서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남은 시간을 즐겨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쓰레기는 책임지고 처리하셔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여야겠지요. 어렵게 되찾아주신 나라인데 후손인 우리가 보존을 못한다면 저 세상에서 얼마나 씁쓸해 하시겠어요. 그냥 예쁜 집 감상만하지 마시고 지금 누리는 이 행복이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노력으로 이루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묵직한 깨달음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석오연보

제1시기(1869~1899)

천안에서 탄생한 후 한문을 익히고 상경하여 응제진사에 합격한 뒤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때

민권운동과 개화운동에 투신 한 뒤 제국신문의 논객을 역임하여 언론창달에 눈뜸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되자 상동교회에 들어가 기독교인으로서 조약폐기에 애를 태움

이후 북간도(용정)에가서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운영, 귀국하여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섬

제2시기(1900~1918)

국권을 강점당한 전후 해외에 나가 독립투쟁을 전개한 시기

부민단, 권업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운영

대종교를 민족의 정통사상으로 받아들이고, 동포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체계적으로 견지

제3시기(1919~1940)

50대~70대까지의 20여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 국내외를 효과적으로 다스려왔던 결산기 군주제 청산, 민주공화제를 처음실시하여 의회민주정치의 제도적 장치와 그 실천을 진두 지휘했던 법통성의 첫주자 세 번의 의정원의장 등 입법부 수반을 역임

그 외 각부 총장(장관), 국무총리, 국무령, 대통령대리, 주석(1935.10.~1940.10.) 등 행정부수반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한 우익단체의 지도자

김구 등과 같이 독립투쟁과 한국독립당 등을 운영 조직하면서 10여곳의 임정 수도를 여건에 맞게 이동함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막후에서 상결(商決)한 뒤 김구로 하여금 계획지도케함 →임시정부의 내정, 교통, 군사, 외교, 교육, 문화, 사법, 재정 정책을 적당히 조절 집행하며 내외동포에게 자신감과 용기, 신념을 불어넣어 줌

-자료 참조<천안시 석오이동녕기념관 사이트>에서-


찾아가는 길-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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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4-03-28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