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감성여행

예술로 마음을 충전하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그리고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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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 아라리오 조각공원

  • 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만남로 43
  • 전화 / 041-551-5100
  • 시간 / 11:00~19:00

어쩌면 규칙적으로, 가끔 모든 것에 지루함이 느껴지고는 한다.
평소라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웃어넘겼을 드라마, 영화들도 클리셰의 지긋지긋함이 유독 진하게 느껴지며 아무런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했던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자지러지게 웃곤 했던 수다들도 왜인지 그저 뻔하고 싫증나는 이야기로 들린다.

사실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가 가장 재미없고 지겹다. 내가 하는 말, 생각들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이런 시기엔 이러한 답답함을 낫게 할 특효 도피처로 향한다. 아라리오 갤러리이다.

한국에 갤러리는 수 없이 많지만, 굳이 아라리오를 찾게 되는 건

이곳에 오면 언제나 생각지 못한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라리오 갤러리를 방문했던 건 2006년 봄이었다.
당시 이 갤러리에서는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답답하던 기분이 전환되었다.
그의 작업은 사진으로 만든 조각이었는데, 왜 그 작업이 나를 개운하게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방문하면 항상 그 미묘한 독특함이 나의 후덥지근한 기분을 조금 식혀준다. 그래서 찾게 된다.

갤러리는 멀리에서부터 특이한 아우라를 뿜는다.

한쪽 모서리에서는 두 남녀가 하늘로 향하는 계단을 걷고 있고, 또 다른 벽의 높은 한 쪽 면에 있는 벤치에서는 어느 남자가 책을 읽고 있다.

대체 왜 저기에 계단이 있고, 벤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듯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이 있고, 이는 썩 잘 어울린다.

갤러리 입구로 올라가다 보면 무심하게 갤러리 내부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어떤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이 거대한 해부모형은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라는 작품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아라리오에서 영구 소장하게 된 대표 작품이다.

갤러리로 들어서는 문에는 Antony Gormley의 Reflection작품이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흥미로운 조각상이다.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날 유혹하고, 주저 없이 나는 아트샵에 들어선다.

독특한 팬시 상품과 예술 서적들의 조합이 멋진 곳이다.

지갑은 가벼워질지언정 감성은 충만해지는 매력적인 곳이다.

지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충남 출신 작가 소장품으로 구성된 전시 ‘낯익은 해후’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느껴지는 느긋하고 담담한 분위기. 하지만 그곳에서 오는 묵직하고 깊은 울림이 있다.

전시는 충남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한국화 거장들로부터 시작된다. 3층 전시장은 부드럽고 몽환적으로 표현된 자연과 민초의 삶이 드러나는 청전 이상범의 작품에서 짐승, 꽃, 나무 등을 세필채색화로 즐겨 그린 조중현의 작품, 겨울 풍경과 초가집을 향토적으로 표현한 김화경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4층 전시장에는 서양화와 조각을 걸쳐 사진과 영상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두운 전시장 속 홀로 반짝이고 있는 노상균의 작품은 경배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불상에 전통적인 금박 장식 대신 시퀸(sequin)이라는
통속적이고 향락적인 재료로 장식되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대 사진의 모태가 되는 두 작가 황규태와 박영숙은 60년대 초기 현대 사진에서부터 그 이후 디지털 사진으로 연결되는 실험적 사진의 여정을 보여준다.

"거리의 예술, 아라리오 조각공원"

아라리오갤러리는 안에서의 감상뿐만 아니라 외부의 예술거리로 확장해놓았다.
천안의 명소라 불리는 아라리오 조각공원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아라리오 조각공원의 중심에 설치된 작품은 코헤이 나와(Kohei NAWA) 작가의 ‘매니폴드MANIFOLD’이다.

넓이 16미터, 높이 13미터에 달하는 설치작품이 공원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최정화 작가의 작품 ‘꽃의 마음’이 도심의 번화가인 신세계백화점 앞에 설치되어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수보드 굽타의 'Line of Control'

키스헤링의 ‘줄리아’

데미안허스트의 ‘채러티’

아라리오 회장 김창일(CI KIM)의 작품 ‘IMAGE II’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들이 조각공원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는 사람들이 혼자 혹은 둘, 셋씩 모여 그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터미널과 백화점,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이 떠들썩하고 복잡한 시내의 중심에서
조각공원은 천안에 사는, 혹은 방문한 사람들 모두에게 신비로운 한적함과 예술적 영감을 제공한다.

성동훈의 ‘돈키호테’

나도 그늘이 좋은 벤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다랗고 화려한 작품들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전시를 보고 신선해진 마음에 더욱 생기가 도는 게 느껴진다.

이 지붕 없는 갤러리를 장식하는 작가들의 정신적 생산물들은 기분을 평화롭게 한다.

물론 매력적인 건물의 내, 외관과 조각공원,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에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쾌적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허전한 마음에 예술적 영감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이니 이만큼 좋은 거리 위의 갤러리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