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감성여행

시의 숲으로 홀로 떠나는 한가한 문학소풍

산사현대시 100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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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현대시 100관

  • 위치 / 천안시 동남구 문암로76(안서동 115번지)

    백석대학교• 백석문화대학교 창조관 13층

  • 관람안내 / 월~금 10시-12시, 오후1시-5시

    (방학 중 근무 9시-12시)

  • 문의 / 041) 550-2631,2346

쨍쨍거림이 소리로 들리는 것만 같은 뜨거운 햇빛,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 검어지는 피부,
목을 간질이며 흘러내리는 땀 줄기, 아무 것도 안 해도 덥다는 것은 사람을 참 정신 없게 만든다.

여름의 지하철이나 거리는 유독 힘이 든다. 부채질도 땀 닦기도 별 거 아닌데 지친다.

더위에 감정들이 많이 예민해진 것인지 싸우는 사람들도 유독 많이 보인다.
봄에 이별을 많이 한다던데 정말인가 싶다. 행복은 한가에 의존한다고 했던가.

선선한 곳에서 시나 한 구절 읽고 싶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가해지고 싶다.

산사현대시100년관이 있는 백석대학교로 간다. 오랜만에 캠퍼스를 걷고 있자니 풋풋한 학생들의 모습이 새삼 좋아보인다.

5월 1일부터 '광복 70주년, 현대시 100년 날개를 달다'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앞선다.

1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시화전이 나를 맞는다.

광복 70주년과 관련해서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 40여 명의 작품들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지금 특별전시회에서는 시인들의 초상시화, 희귀시집, 육필액자 등을 전시한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작품들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국내 유일의 시 전문박물관인 산사현대시100년관에 들어서면
한국 현대시 100년사 대표 시인들을 통해 한 눈에 볼 수 있는
1관에서부터 시 여행을 시작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익혔던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욱 나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시를 발표했던 그 옛날 낡은 시집들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2관으로 가는 사이에는 반가운 시를 마주하게 된다.
진달래꽃. 김소월의 잔인한 이 시는 우리네 감성 교집합의 대명사처럼 민족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초판본을 마주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읊어보는 진달래꽃은 또 다른 안타까움으로 마음에 박힌다.

2관은 요즘 유행 아닌 유행인 콜라보레이션의 시초와 같은 작업인 시화를 보여준다.

그림과 글의 절묘한 조화로 한 작품 작품마다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시와 그림을 한 번에 감상하자면 새로운 감각으로의 물결이 퍼지는 듯하다.

시와 삶을 이야기하는 3관은 대표 시인들의 육필병풍을 전시한다.

인쇄된 글자가 아닌 손으로 직접 쓴 시는 작가가 우리에게 직접 시를 읽어 주는 것 같은 특별한 따뜻함이 있다.

하나의 병풍으로 연결된 몇 편의 시는 연속된 우리네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들의 암시가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이었던 곳은 바로 4관인 시의 숲이다.

말 그대로 숲을 형상화하며 시로 가득하게 꾸며진, 시로 이루어진 숲이다.

시인들의 육필원고로 뒤덮인 공간에 서 있자면,

숲 속에서 산림욕을 하는 것처럼 시에 둘러 싸여

또 다른 우주에 들어와 있는 듯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불현듯 떠오른 영감을 글로 옮겼기 때문일까.

필체 대부분이 흘리듯 써내린다.

흐르는 글자들에 떠내려가다 보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시를 볼 수도 있다.

각자의 삶을 짧은 글로 남기고 간 나그네 시인들의 흔적을 따르며, 분주하지만 허무한 삶의 틈을 돌이켜 본다.

시를 처음 접했던 게 언제였더라.

분명 유치원에 다닐 적 혹은 한글을 처음 익히게 되었을 무렵 부모님이 어린이 동시집을 사주셨겠지만,
시라고 하는 것에 특별함을 느꼈던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였다.

학교에서 ‘안경’이라는 주제를 주고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라고 했는데, 나는 빨리 완성하고 쉴 생각에 시를 선택했다.

시는 내게 글이라기보다는 글자였다. 렌즈의 광학적 원리를 중심으로 몇 줄 썼던 것 같다.

잘했다는 한 친구의 시를 선생님이 읽어주셨는데, 그 아이는 안경을 아버지의 삶 비유해 썼고,

나는 감동받았다. 우리 아빠는 안경도 안 쓰는데 아빠가 생각났다.

이후 나는 시를 써보거나 많이 읽는 애독자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간혹 이리저리 헐떡이게 되는 순간,
나 홀로 조용히 삶의 짧은 조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면
아름다운 시의 숲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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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로 인해 따스하고 향기로운 시의 매력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혼자여도 전혀 외롭지 않은, 한가하지만 정신도 마음도 가득 찬 따뜻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