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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암동
팀명 부성2동 등록일 2016-07-01 조회 5800
첨부
 

天安郡의 北二面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車垈아 郡西面의
栗枝洞과 牙山郡 一東面의 栗枝里를 합쳐서 수릿터(車垈)와 차돌백이의 뜻을 따
서 車岩里라 하여 歡城面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天安市에 편입되어 車岩洞으로
되었다. 牙山灣의 白石浦와 경기도의 평택 지방으로 이어지는 큰길이 있어 옛날
에는 오가는 길손이 많았다.

수리터(수레터:車垈) : 차암동에서 가장 큰 마을, 마을의 생김새가 수레(車)와
같다고하여 수렛터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
기에 의하면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牙山灣에 상륙한 淸軍
이 많은 전쟁물자를 마차에 싣고 이곳을 지나다가 고장난 마차를
고쳐 갔다고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라고 전한다. 또 다른 말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많은 차돌(고령도)이 박혀있어 한때는 도자기
의 원료로 반출되면서 나왔다고 차돌백이라는 말이 변하여 차대(車
垈)가 되었다고 한다.

방개울(밤개울:栗枝洞) : 차암동에서 두 번째로 큰마을. 수리터 남쪽에 있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개울이라고 하였다. 밤은 栗로 쓰이고 "개"는
支와 같은 뜻으로 쓰이며 [支]는 무엇만 못하다는 뜻이다.
本만 못한 것이 支다. 本洞만 못한 작은 마을에서 온뜻이다.
"울"은 柵에서 온듯하다. 울타리의 첫음에서 따온 뜻으로 栗支柵
에서 나온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붉은뫼(赤山) : 일제때부터 광복후까지 금광이 이곳에 개설되어 질이 좋은금(金)
이 많이 생산되었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고 금광터만 남아있다.
수리터에서 바라보아 동쪽에 우뚝솟은 산으로 아침해가 이곳에 떠
서 마을을 밝힌다. 밝은뫼가 변하여 붉은 뫼가 된 듯하다.

옥녀봉(玉女峰) : 붉은뫼와 연봉으로 수리터 앞산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정상이
평평하여 女性像이라고 하였다. 정상은 많은 사람이 앉아서 달맞이
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말등의 안장모습으로 되어 안정스럽다.
마을 사람들은 옥양가리티라고 부른다. "옥양"은 玉과 같은 뜻이
고 가리는 山을 뜻하는 것으로 玉을 쌓은 산이라는 뜻이다.

차돌백이(차돌박이) : 수레터 마을의 뒷산이다. 흰색이 차돌(石英)이 많이 박혀
있어 차돌박이다. 한때는 차돌이 도자기의 원료로 반출되었다고
전한다.

장승배기(長 垈) : 수리터 북쪽 천안군 직산면으로 통하는 길가.
옛날에는 이곳에 장승이 서있어 아산지방과 천안으로 가는 이정표
가 있었다.
(장승은 이정표와 동리의 수호신으로 사용되었음)

점터(粘垈) : 웃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이곳에서 나오는 粘土의 질이
좋아 옹기 그릇을 많이 굽던 터. 지금은 점터는 없어지고 옹기그
릇 조각이 많이 출토된다.

백산골(白山谷) : 수리터 남쪽에 있는 골짜기. 長은 길다는 뜻이고 達은 山을
가리키는 말로 "새"는 谷을 뜻한다.
산간에 발달된 긴 골짜기를 이른다.

웃골(上谷) : 장승배기가 있는 골짜기 北高南低의 지형이라 지형이 높은 북쪽이
라 웃골이라 하였다. 웃골 골짜기 길가에 장승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장승은 없다.

진줄(長谷) : 수리터 앞에서 방개울로 이어지는 좁고 긴들. 진줄은 「긴들」이
길다고 하여 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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